젊은 날의 기억

젊었을 적 나는 참으로 가난했다. 그리고 그 나이쯤엔 누구나 그랬듯이 나도
친구와 음악을 좋아했다.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팝뮤직에 심취해 있었고,
최신곡을 먼저 듣고 친구들 앞에서 우쭐대며 아는 척을 하려고
AFKN 방송까지 듣는 극성을 떠느라 날밤 새는 것쯤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
또 선배들이 드나드는 음악 다방은 참으로 가고 싶은 곳이었다.
지금 듣기에는 촌스러울지 모르지만 ‘흙 다방, 황소 다방’ 같은
이름은 그래도 그 시절 고향 땅에서 대단한 인기가 있었다. 그 다방들의
작은 수족관에는 악어들이 있어 음악을 듣는 틈틈이 이놈들을 놀리는
재미도 만만치 않았으며 장발의 디스크자키들이 던지는 멋스러운 멘트와
감칠맛 나는 음악 이야기는 시간 가는 줄을 모르게 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나와 친구들이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두 말 할 것도
없이 이 음악 다방 이었다. 군 입대 전이라 취직도 쉽지 않았던 그
시절은 지금처럼 아르바이트 자리도 흔치 않았기 때문에 주머니 속은
늘 가볍고 허전한 데다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초조하고 조바심치던
우리에게 음악과 친구는 유일한 위안이었다.

그러나 늘 턱없이 모자라는 커피 값으로 고민해야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커피 한두 잔 시켜 놓고 여러 사람이 앉아 있어도 그다지 흉이 아니었고,
별나게 눈총을 주는 이도 없었다. 어쩌다 누군가가 조금 큰돈을 내놓는
날이면 위스키가 한 방울 섞인 홍차나 위스키 싱글 한잔으로 호사를 부리며
부자가 된 것처럼 우린 행복해했다.

검게 물들인 야전 잠바와 군복 한 벌이면 사계절을 보낼 수 있었던
가난했던 젊은 날, 여러 사람이 나누어 피던 담배 한 개피,
친구 것을 한 모금 덜어 마시던 커피! 그것들은 몇 번을 곱씹어 보아도
마냥 정겹고 흐뭇하다. 커피가 흔해진 요즘, 나는 어느 곳에서도 젊은
날 마셨던 그 커피 맛을 찾을 수 없다.

강영근 님 / 서울 중구 신당5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