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은아, 고맙다!

얼마 전 5살짜리 딸아이가 며칠째 열이 올라 병원에 다녀야 했다.
편도에 염증이 생겨 열이 떨어지지 않는다며 밤을 기점으로 2시간마다
체온을 재고 상황을 봐서 큰 병원으로 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의사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속이 타는 걸 어쩔 수가 없었다. 아이를 업고 집에 와
물수건으로 온 몸을 닦은 뒤 체온을 재려고 하는데, 시댁에 8개월 된
둘째아이를 맡겨 놓으면서 체온계를 가져다 두고 온 일이 그제야 생각이 났다.

아이가 엄마 옆에서 계속 보채는 데다가 비까지 세차게 내려서 약국에
가기가 힘들었는데, 다행히 같은 아파트 1층에 지난 해 가르쳤던 제자
영은이가 살고 있는 게 생각나 어렵게 전화번호를 알아내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영은이네 집에도 체온계가 없다고 했다. 안 되겠다 싶어서 아이가
잠들기를 기다려 약국에 다녀오려고 일어서는 순간, 밖에서 사람 발소리와
숨소리가 거칠게 들려오는가 싶더니 누가 문을 두드렸다.

문을 열어 보니 영은이가 비를 맞은 모습으로 체온계를 내미는 것이었다.

“저희 집에 없어서요. 옆 동에 혜나가 살거든요. 그래서 빌려 왔어요.
여민이가 많이 아파요?”

안 그래도 아이가 아픈데 쉬게도 할 수 없는 맞벌이의 설움 때문에 눈물이
날 지경이었는데, 내가 급한 걸 느끼고 비까지 맞고 빌려 온 사려 깊은
영은이를 보니 마음이 환해지면서 아이가 곧 나을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담임도 아니었고 단지 일주일에 두 번 들어가는 교과 담임일 뿐이었는데,
체온계 있느냐는 한마디에 비까지 맞고 가져다 주다니….

다음날 여민이는 다행히 열이 내렸고, 영은이의 담임 선생님께 이 일을
말씀 드렸더니 종례시간에 모두가 듣도록 미담으로 얘기를 해 주었다고 했다.
스승과 제자 사이가 점차 소원해지고 자기 일이 아니면 나 몰라라 하는 요즘,
나를 다시 한 번 제자들에게 사랑으로 다가가게 해 준 경험이었다.
“영은아, 정말 고맙다. 늘 예쁜 마음 간직하며 살아가렴.”

이선숙 님 / 경기 의정부시 가능1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