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히 배어 나는 사랑

아버지는 내가 어려서 사우디로 떠나 4학년 즈음에야 돌아오셨기 때문에
난 아버지와의 추억이 별로 없다. 집에 돌아오신 뒤에는 늘 술에 취해
계셨고, 엄마와 자주 다투셨기 때문에 난 솔직히 아버지가 안 계실 때가
더 좋았다고 생각하곤 했다.

그러다 오빠가 군대에 갔다. 엄마는 늘 오빠 생각만 하면 눈물을 흘리셨는데,
아버지는 군대 간 오빠에 대해서는 한마디 말씀도 없으셨다. 오빠가
첫 휴가를 나왔다가 돌아가던 날, 엄마는 어쩔 줄 모르며 울고 계시는데
아버지는 군화를 신고 있는 오빠에게, “우리는 너 군대 있는 동안 면회
안 갈 거야. 그러니까 기다리지 마라” 하시는 게 아닌가. 난 그렇게
매정하게 말하는 아버지가 미웠다. 어떻게 고생하는 자식에게 저런 말을
하실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오빠가 떠나고도 한참 뒤까지 우는
엄마를 달래면서도 난 “아빠는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며 아버지
들으라는 듯 계속 화를 냈다. 아버지는 오빠가 떠난 뒤 작은 방에 들어가
나오지 않으셨는데, 그때 우리집은 방과 방 사이가 얇은 판자로 나뉘어
있던 터라 작은 소리도 다 들렸다.

한참 뒤 찾을 게 있어서 잠깐 작은 방에 들어가니 아버지는 벽을 보고
누워 계셨다. 마침 아버지 머리맡에 찾는 물건이 있어서 다가갔을 때,
난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아버지의 눈물이 눈가에 맺혀져 있는 것을 보았다.
난 놀라고 당황스러워, 서둘러 나왔다. 생전 처음 아버지의 눈물을
보았기 때문이다. 당신이라고 아들 걱정이 왜 안 되셨겠는가?
왜 가슴 아프지 않으셨겠는가?

언젠가 웃으며 아버지께 왜 그때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여쭤 보았다.
“군대 가면 사람 그리워지고 기다려진다. 그러다 안 오면 실망하고,
그럼 자꾸만 약해지니까.”

1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 아버지 무뚝뚝한 성격은 여전하시다. 그래도 그
뒤부터 난 여기저기서 잔잔히 배어 나는 아버지의 사랑을 느낄 수 있다.

조은아 님 / 서울 관악구 신림13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