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과 동생

지난여름 기말고사 시험 마지막 날, 동생과 나는 지하철에 올라서도 서로
한마디도 하지 않고 영어단어장에만 눈을 박고 있었다. 동생은 실업계
고교진학 후 늘 상위권을 유지하는 동생에게 난 그 즈음 괜한 경쟁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내릴 역이 가까워졌다.

시험 잘 보라고 인사를 나누고 내리려는데, 동생이 주섬주섬 책을 넣는 사이로
분필통 크기 정도의 검은 상자가 보였다. 뭐냐고 물으며 꺼내 들었는데
지하철이 멈추어 서는 바람에 통만 들고 얼른 내렸다. 전철은 동생을 싣고
다음 정거장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학교로 올라가며 열어 본 상자 안에는
담배 한 개피와 라이터가 들어 있었다. 가슴이 철렁했다. 시험시간 내내
집중이 되질 않았다. 동생이 앞으로는 그러지 않겠다며 문자메시지를 보내
왔지만 배신감은 어쩔 수 없었다. 아버지께선 다리를 다쳐 오랫동안 병원에
계시고 어머니마저 작은 수술 때문에 병원에 계신 이런 때에…. 시험이 끝나고
집에 가니 동생은 이미 와 있었고, 날 보자 잔뜩 겁을 집어먹었다.

동생은 자기 걱정에 내가 시험도 제대로 못 치를까 봐 학교 가는 내내
울었다며 연신 잘못했다고 했다. 동생의 그 말을 듣고 내가 그 동안
진정한 형의 자리에서 비켜나 있었음을 느꼈다. 동생의 작은 잘못에도
늘 나무라고 야단만 쳤을 뿐, 그 시절을 지나온 형으로서 이해하고 따뜻이
감싸 주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 형도 너만 할 때 호기심에 몇 번 펴 봤지만, 하얀 연기 뿜어내는
일이 멋스러워 보여도 좋은 거 없이 건강만 헤칠 뿐이야."

단단히 혼날 각오를 하고 있었던 동생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한참
바라보다가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 순간 난 정말 형이 된 느낌이었고,
나도 눈물이 핑 돌았다. 형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 건지
다시 한 번 깨달으면서….

전재희 님 / 인천시 부평구 청천2동